2023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 우승의 주역, '골든 캡슐'. 찬란했던 아이디어의 순간을 지나, 이제는 연구소와 실무의 현장에서 엄격한 규격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는 '진짜 도구'가 되기까지 — 그 치열한 실무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인터뷰이 소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디자인 엔지니어링 전공.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기기산업학과 석사 과정 재학 중이며, 의료기기 설계 및 사용 적합성 연구실(Medical Device Design & Usability Lab)에서 설계 및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골든캡슐 컨셉 기획 및 도출 · 프로젝트 총괄 · 디자인 설계 · 실험 기획
홍익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디자인 엔지니어링 전공. 현재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연구원에서 소아·청소년 응급의학과 소속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골든캡슐 메커니즘 원리 규명 · 엔지니어링 최적화
현재 근황
현재 팀원 분들께서 각자 의료기기 산업 분야로 진학 및 취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떤 곳에서 활동 중이신지 근황을 여쭤봐도 될까요?
채유진
졸업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료기기산업학과에 진학해 현재 석사 과정 중이에요. 연구실은 의료기기 산업학과 안에 있는 의료기기 설계 및 사용 적합성 연구실(Medical Device Design & Usability Lab)로, 의료기기의 사용적합성 평가를 의뢰받아 수행하는 역할을 해요. 실제 의료진분들을 대상으로 의료기기 개발 프로토타입들의 사용성이 어떤지 평가해 보고, 만약에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개선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연구실이에요. 기존에는 사용적합성 평가 과정 자체를 중심으로 수행했으나, 현재는 UX, UI 설계에도 함께 관여해주고 있어요.
신영환
작년 2월부터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연구원에서 소아·청소년 응급의학과 소속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개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먼저 소아청소년과 응급실에서 문진이나 에이전트가 필요할 때, 어린아이가 아닌 보호자에게 문진을 받아야 할 때가 있어요. 이때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LLM AI 에이전트를 연구해요. 그 외에도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용하여 아이들의 교구를 높이거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탄성력과 기압차라는 아이디어의 탄생
탄성력과 기압차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굉장히 기본적인 개념이지만, 이를 수액에 결합할 아이디어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해당 개념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신영환
사실 기계과 두 학생은 처음에 안 된다고 하긴 했어요. 4월에는 약간 반신반의해서, "이게 되나?" 하고 있었는데 유진 님이 그때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어요.
채유진
약간 계시처럼, 정말 1초 만에 딱 떠올랐어요. 그때 당시 주제는 중력과 관계 없이, 동력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수액 펌프로 정해진 상태였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걸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엄청 많은 아이디에이션을 하고 있었던 때였어요. 스프링, 환자가 누워서 등으로 누르기 같이 별의별 게 다 있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미쳐있어서 머릿속에 그거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구현〉이라는 산디과 수업에서 교수님이 친환경 패키징 디자인의 사례로 샴푸 통을 하나 소개해 주었어요. 상부 윗부분에 펌프가 있고 그 밑에 플라스틱 통 안에 고무풍선이 있어서, 원래는 하나를 다 쓰면 플라스틱 통을 씻어서 버려야 하는데, 그 고무풍선이 있으니까 리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샴푸 통이었어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생각이 들었어요. 풍선이 쪼그라들어 있는 상태에서 플라스틱 통이랑 고무풍선 사이를 저기압으로 만들면, 풍선이 수액을 머금으며 점점 부풀어 오르고, 필요할 때 이 저기압 상태를 해제하면 풍선이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힘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바로 Z동으로 가서 그때 당시 먹고 있던 포카리스웨트 병에 튜브를 연결하고, 최초의 실험 모델을 만들었어요. 사실 계시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런 발견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때 당시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를 항상에 편안하게 되어서 모든 걸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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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컨택과 자문 과정
어떻게 컨택을 진행하고 자문하셨나요? 프로젝트 소개 당시, 포인트로 삼은 것은 무엇인가요? 학생 신분으로 응급구조 전문가에게 자문할 때, 어떻게 조언 요청을 하셨나요? 관련한 나만의 팁이 있나요? 특히 프로젝트를 프로토타입과 소개할 때, 증명과 설득을 위해 강조해 말한 부분이나, 필살기 같은 것이 있었나요?

신영환
최석재 의사님이 직접 브런치에 댓글을 남겨서 컨택을 했고, 중국 의료진분들 같은 경우에는 팀에 중국인 유학생 백원님이 계셔서, 그분을 통해서 컨택을 했어요. 가천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겸임교수 하고 계신 강경순 교수님은 저희가 메일을 보내고 직접 컨택했었어요. 광주 삼성병원에서 근무하시던 오운화 응급구조사님이 함께 오셔서 도움을 주셨어요.
강경순 교수님, 오운화 응급구조사님과의 전문가 자문 현장
채유진
좀 디테일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최석재 선생님은 네이버에 응급의학과 의사 이런 식으로 검색하다가 유튜브에서 그분의 유퀴즈 영상을 보게 되었고, 선생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브런치에 들어가 작가한테 문의하기 창에서 품목 작성했어요. 우리가 왜 선생님께 자문하고 싶은지, 뭘 여쭤보고 싶은지 등등을 되게 길게 썼어요.
응급의학이라는 게 사실 되게 기피하는 학과잖아요. 근데 그분이 평소에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 학과 홍보도 많이 하시고 인식을 바꾸려고 스스로 운동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 같은 학생들이 부탁을 드렸을 때 흔쾌히 받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분께 연락드렸어요. 그 이후로는 메일이 왔고, 그분이 그때 수원 화홍병원 중환자의학과 과장님이셔서, 직접 병원으로 비타500을 한 사 들고 갔어요. 10층 사무실에서 한 명은 레코딩, 한 명은 인터뷰 진행, 한 명은 꼬리 질문 이런 식으로 분업해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중국 의료진분들은 쓰촨성 대지진이랑 루산 지진에 파견을 봤던 의사, 간호사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을 위챗이라는 중국 메신저 앱에서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하기 전에는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을 다 같이 모아서 대본을 썼고, 백원씨가 인터뷰하기 직전에 대본을 보면서 편한 중국어로 미리 번역을 해놨어요. 하나의 질문이 끝나면 백원씨가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주고, 저희가 그거를 받아 적으면서 좀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한국어로 물어보고, 백원씨가 그걸 다시 중국어로 통역해서 물어봐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전문가 조언으로 바뀐 것들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삭제, 수정한 기능이 있나요? 전문가들끼리 의견이 충돌한 적이 있나요? 설득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텐데, 제작하며 정말 애착이 가는 기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조언에 과감히 삭제하거나 수정한 기능이 있었나요? 또한 자문한 전문가의 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끼리 의견이 충돌한 적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신영환
기능 자체가 삭제된 건 없지 않나요? 단위는 좀 바뀌었고, 버전별로 가장 크게 바뀐 건 사이즈인 것 같아요. 처음 버전이 너무 크고 무겁다고 해서 원래의 20~30%로 용적을 줄였어요.
채유진
원래는 풍선 하나에 몇 mL로 들어갈지를 정확히 규정을 안 했는데, 두 번째 프로토타입에서는 한번 사용할 때의 용량을 미리 정하고 만들었어요. 그러면 풍선의 크기가 어느 정도 정해지니까, 이 정도면 몇 ml 정도 용량이 나오겠다를 생각하면서 용적을 줄였어요. 이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했어요. 풍선이 부풀 때 어느 한쪽이 늘리는 성능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첫 번째로는 풍선이 최대한 고루고루 길에 안 달게 해야 했고, 두 번째로는 제품이 굴러가지 않게 납작한 부분이 있어야 했어요. 고등학생 때 배운 기하를 떠올리면서 용적을 계산했어요.
단위 표기의 문제
제품의 롤러 열에 속도 단위가 쓰여있는데, 그거에 대해서도 되게 많은 고민을 했어요. 몇 단계로 할 건지, 몇백 mL로 할 건지, 단위 체계나 유닛 같은 부분도 고민이 많았어요. 초반에 milliliter per minute이나 CC per minute 같은 단위를 쓰기도 했는데, 둘 다 문제가 있었어요.
단위 라벨링 디자인 시안
30min 단위로 제작했던 실물 프로토타입
사용 시간을 30분 정도로 규정했는데, 제품이 재난 상황 골드타임에 쓰이는 거니까 milliliter per 30min으로 설정을 했어요. 그런데 hour라는 단위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어요. 병원에서는 1초에 몇 방울이 떨어지는지를 계산을 하는 단위(gtt)가 있거든요. 간호사분들은 간호대학 다닐 때부터 기본적으로(gtt)에 맞춰서 계산하는 연습을 하셔서 1시간이나 1분 단위로 하면 계산이 편하게 되는데, 그걸 애매하게 30분으로 맞추니까 계산이 꼬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익숙하지 않은 단위 때문에 바쁜 상황에서 투여가 딜레이가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milliliter per hour로 바꿨어요.
CC per minute은 알파벳 C가 숫자 0이랑 혼동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0CC/min일 때 긴박한 상황에서 2000으로 잘못 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글씨가 엄청 크게 적혀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느리게 넣어야 되는 사람한테 빠르게 넣거나, 빠르게 넣어야 되는 사람한테 느리게 넣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실제로 있었던 피드백이었어요.
풍선 색상의 변경
신영환
한 마디만 더 보태면, 첫 번째 버전의 골든 캡슐을 피드백 받았을 때 색깔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때 풍선을 빨간색으로 했는데, 삼성서울병원 간호사분들 보시고 처음 하신 질문이 "이거 혹시 피인가요?"였어요. 외국인 분들도 전쟁에서 쓸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다들 당황했어요.
변경 전 — 빨간색 풍선
변경 후 — 주황색 풍선
NS(생리식염수)는 파란색, DW(포도당)는 주황색, 이런 식으로 색깔이 정해져 있는데, 그걸 모르고 저희가 빨간색으로 통일을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는 이걸 반영해 캐나리색 같은 주황색으로 풍선 색을 바꿔서 진행했어요. 사실 저희 지도 교수님도 응급의학과 교수님이셨는데, 리디자인 하기 전 면담에서 첫 질문으로 "이거 피인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의료진들이 보는 게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NS(생리식염수) — 파란색이 업계 표준
DW(포도당) — 주황색이 업계 표준
채유진
설득할 이유가 없는 게 의료 업계는 약속처럼 정해진 게 많아요. 병원을 오가다 보면 집기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특히 가스류 같은 경우에 산소, 이산화탄소 등등 다 빨강, 초록, 노랑, 하양, 이렇게 색이 정해져 있어요.
의료용 가스 배관·용기의 색상 코드 — NFPA 99 (Health Care Facilities Code) 기준. 산소는 초록, 아산화질소는 파랑, 이산화탄소는 회색 등 가스 종류별로 색상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신영환
그러니까 색이 바뀌어버리면 어떤 약이나 그런 것들이 오용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A를 넣어야 하는데 갑자기 산소가 잘못 들어간다거나 하면 이제 완전 대형 의료사고가 나게 되는 거예요.
채유진
근데 보통 의료사고는 안 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러면 이미 출시가 안 되거든요. 개발할 때는 시판 후에 출시가 되고 나서, 실제로 병원에서 쓰이면서 어떤 사용 오류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FDA나 식약처 같은 규제기관에 전부 보고하게 되어있어요. FDA 데이터가 엄청 방대한데, 개발을 할 때는 내가 하고자 하는 품목이 인류 역사상 역대 어떤 사용 오류가 났는지 다 검수하고 그거를 다 피해서 가게끔 개발해야 애초에 출시가 돼요. 그래서 색깔 바뀌어서 내거나 하면 허가가 안 될 확률이 100%예요.

MAUDE(Manufacturer and User Facility Device Experience)는 FDA가 운영하는 의료기기 시판 후 감시(PMS) 데이터베이스다. 의료기기 출시 후 보고된 이상사례·오작동·사용 오류 기록을 누구나 검색할 수 있다. 의료기기를 개발할 때 유사 품목의 과거 사용 오류 이력을 MAUDE에서 사전 조사하면, 설계 단계에서 동일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출품 이후, 다듬고 싶은 부분
출품 당시의 골든 캡슐에서 다듬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신영환
보관 관련해서 좀 아쉬운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풍선이 라텍스 기반의 초탄성 재질인데, 끼우자 마자의 풍선 탄성과 일주일 뒤에 풍선 탄성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을 똑같이 재도 한 2, 30%씩 계속 차이가 나니까, 보관한다고 하면 난이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골든캡슐 기술 담당 지도교수님이셨던 김지호 교수님이랑 돌이서 한번 가정하면서 실험을 해봤는데, 이건 AI가 더 잘 나오면 다시 증명해 보기로 하고 멈췄거든요. 재료가 너무 변덕스러워서, 그때 증명을 못 해본 게 사실 좀 아쉽긴 했어요. 보관기간과 유통기한을 정확히 몰랐었던 게 아쉬웠어요.
채유진
유통기한이 되게 중요한 게 그런 기술문서에 적어야 되거든요. 품질인증서, GMP라고 하는 걸 받을 때나 인허가를 받을 때 의료기기의 모든 스펙을 다 적어야 제출해야, 규제기관에서 보고 심사를 해줘요. 거기에 유통기한이나 보관 방법도 적어야 했는데, 골든 캡슐은 그걸 적기가 어려웠어요. 풍선이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같을 수 있을지, 우리가 단순히 계산은 할 수 있지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서 증명할 수 없었어요.
그림 8. 의료기기 허가신청서 항목 — 출처: 「의료기기 기술문서 심사 이해하기 가이드라인(민원인 안내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재사용성과 친환경
채유진
23년도에는 저희가 리유저블을 좀 강조했었는데 이게 완전 학생다운 생각이었어요. 3년 전에는 그 누구보다 저희가 친환경을 가장 많이 강조했고, 그걸 듣는 일반인들도 "오 좋네요"라고 했어요. 조금이라도 의료기기 아는 사람들은 "이거 일회용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지만요. 처음부터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한 건 아닌데, 개발을 하다 보니 풍선을 반으로 쪼개 넣는 형상을 채택하게 됐고, 풍선만 꺼내고 버리면 캡데기는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리유저블이라는 컨셉을 추가했었어요.
당시 추구했던 재사용 메커니즘 — 풍선만 교체하고 외부 캡슐은 재사용하는 구조를 구상했다.
의료기기는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폐기를 해요. 주사기, 장갑 이런 것도 다 버리고, 수액 맞고 나서도 그거 다시 안 써요 무조건 다 버려요. 멸균, 위생, 세척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고, 위험 관리 측면에서 의료기기는 단 한 명도 감염되지 않을 완벽한 프로세스를 구현하지 않는 이상 재사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똑같이 다섯 번 사용해도 어디에서 사용했느냐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는데, 이걸 어떻게 매번 성능을 측정하고 규정할 수 있겠어요. 현실적으로 재사용은 정말 어려워요.
다른 재난 상황에서의 활용 가능성
2023년도에 튀르키예나 시리아 대지진 이후에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찾아왔는데, 만약 골든 캡슐을 지진이 아닌 전염병 창궐 지역이나 아니면 산악 조난 상황 등 다른 재난 상황에서 사용한다면 지금의 형태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신영환
산악이면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 애초에 쓰촨성 지형이 산악지대가 좀 많았다고 들었어서, 그걸 고려하고 디자인을 했던 부분이 있어요.
쓰촨성은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어 지진 발생 시 산사태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 의료진이 링거팩을 들고 진흙이 된 산길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링거 바늘이 환자 몸에서 빠지거나 의료진이 부상을 입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팀원 백원이 이러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공유해주면서, 팀은 해당 문제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채유진
사실 방금 말씀하신 예시들이 다 그냥 저희가 말하는 재난상황 안에 포함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다른 상황, 예를 들어 가정용이나 병원용으로 생각해서 말씀드리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정용으로 하면 원래의 DW나 NS 대신, 포도당이나 생리식염수라고 대놓고 써놓을 수도 있겠어요. 일단 유저가 바뀌니까 거기에 붙어있는 라벨이나 사용설명서도 달라질 수 있어요.
제품 외관 라벨링의 다양한 경우의 수를 설계하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A/B 테스트를 진행할 때 사용한 자료.
만약에 병원용으로 하게 된다면 무조건 기존 풀대 시스템이랑 호환되게끔 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창업하는 과정에서 유통사 분들이랑 미팅을 했을 때 계속 "이거 기존 폴대랑 어떻게 호환될 거예요?"를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야 병원에 팔 수 있기도 하고요. 근데 아마 재난용이어도 재난현장에서 구조된 환자분들은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기 때문에 호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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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경험이 실무에 미치는 영향
당시 골든 캡슐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 현재의 업무나 학업에 어떤 밑거름이 되고 있나요?
신영환
저 같은 경우에는 다이슨에서 만들어준 프로젝트 사이트가 있는데, 그걸 현재 지도 교수님한테 보여드리니 프로젝트를 알고 계셔서 바로 말이 트였던 경험이 있었어요. 골든 캡슐에 대해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어요. 다른 학교에서 메디컬 디자인하시는 분들께 문의도 많이 받았어요. 작년에 고려대학교에서 강의 한 건이 왔었고, 서울과기대에서도 연락이 와서 한 번은 아예 2시간 동안 인터뷰 도와드렸었어요. 또 의료 창업 동아리에서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연락받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채유진
저는 지금 대학원에서 의료 업계의 백그라운드 지식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그때 열심히 찾아보고, 창업한다고 공부해서 나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학과에 의료기기 특허 수업이나 창업, 프로젝트 관리 수업 등 의료기기 개발 관련된 여러 가지 수업들이 있는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과거의 추억이 생각나고, 그때 이해 안 되고 해결 안 됐던 것들이 좀 더 잘 이해되는 느낌이 있어요.
산업의 현실과 기회
채유진
박람회에 가보면 전 세계에 디자인 기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 제품들이 해외 선진사들에 비해서 되게 디자인 경쟁력이 떨어져요. 사장님들도 그걸 무조건 다 알고 계세요. 우리나라도 디자인에서 많은 발전이 있어야 된다고 두세 분 이상이 말씀하셨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디자인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는 거예요.
신영환
인원이 없다는 게 좀 크기도 해요. 제가 아는 본 센터에 직원이 총 17~18명 있는데, 디자이너가 한 명이에요. 다 개발 또는 기획이에요. 그러니까 개발을 편하게 하려고 해요.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려고 하면 개발 소요가 더 드니까요. 디자이너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이상부터는 추가 개발이 돼야 돼 버리고 하면 바로 캔슬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채유진
의료기기 업체는 의료기기 디자이너가 없거나, 한 명 있거나, 한 명 있었는데 퇴사했거나 이 셋 중 하나에요. 근데 출시를 하려면 디자인을 해야 되니까, 보통은 다 외주를 맡기는데 이게 문제가 뭐냐면 외주를 맡기게 되면 소통이 되게 어려워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으면 편하게 그때그때 말을 할 수가 있는데 거기는 외부 업체랑 계약 관계이고 이메일로 소통하고 하나하나 따 편하지가 않아서 정말 마음에 드는 결과를 만들기도 되게 어렵고 되게 느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랜드에 톤이 없어요. 박람회 같은 데 가보면 GE 같은 곳은 브랜드 컬러가 뚜렷한데, 우리나라는 나오는 제품마다 다 다르게 생겼어요. UI조차도 이게 한 회사에서 나온 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 다르게 생겼어요. 회사 입장에서 되게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브랜드 디자인은 우리나라의 영세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에요.
채유진
그래서 의료기기에 대한 지식이 있고 디자인을 할 줄 안다면 진지하게 채용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많아요. 그 정도로 너무 부족해요. 또 지금은 의료기기 디자이너라는 분야가 완전히 시작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고, 의료기기 디자인을 하려면 뭘 공부해야하는지도 잡혀있는 것도 없으니까 독학을 해야 해요.
미래 목표와 비전
현재 자신의 목표나 비전이 무엇인가요?

신영환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 분야가 이제 더 이상 하드웨어 쪽은 아니게 됐는데, 언젠가는 하드웨어를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교수님이랑 연구하고 있는 로봇이 언젠가는 소아에게 많이 쓰이도록, 트렌드화를 하려고 저희가 노력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제가 하진 않더라도 설계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AI 쪽을 많이 다루게 되더라고요. LLM이나 AI 관련해서도 후배분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고 싶어서 제가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들을 많이 열고, 다른 학교들에게 홍보 많이 해서 제 자체로만 열 수 있게 노력을 해보려고 해요.
채유진
제 인생의 큰 비전과 목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진심과 열정이 있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AI 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상향평준화 돼서 웬만하면 품질이 다 괜찮아요. 비슷비슷해진 상황에서 선택지가 너무 많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점점 선택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끼고 피로함을 느끼고 그런 상황이 되는 거예요. 이때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려면 무조건 마음을 동하게 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바로 스토리텔링, 서사, 진심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런 스토리텔링이랑 서사는 사실 연기를 해서 나오는 게 아니고, 본인 그 자체가 정말로 좋아해야 감동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래야 진심이 나오고, 어느 일을 하든지 그 업계에서 결국엔 상위 1%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학과가 유망해서, 직업이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아서 선택하는 걸 저는 진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거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 인생에서 저는 진짜 좋아하는 걸 해야 된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의 인생 비전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하자인데 이건 명확하게 정해졌다기보다는, 인생 단계에 따라서 계속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좋아하는 의료기기 디자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나중에 재단이나 기관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의료기기 디자인 분야의 초석을 다지고,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면서 체계적인 커리큘럼도 제공하고 싶어요. 또, 의료기기 디자인하는 사람들끼리의 포럼이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왜 이런 걸 하고 싶냐면, 사실 의료기기 디자이너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있는 말은 아니에요. 통상적으로 직업명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좀 이르죠. 근데 아주 소수일 뿐이지 누군가는 의료기기를 디자인하고 있잖아요. 이 의료기기 디자인이란 분야를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진짜 있는 분야로 만들고자 하는 지금의 비전이에요.
같은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같은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신영환
AI를 많이 써보시고 잘 쓰면 삶이 윤택해져요.
채유진
저도 동의하고, 또 저는 디자인만 공부해서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산디과 졸업만으로는 사실상 의료기기 디자인 쪽을 알 수가 없어요. 무조건 공부를 따로 해야 하고 의료기기 관련한 연구실 중 설계랑 개발 쪽 관련된 지식 연구실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다른 분들도 만약에 이걸 하고 싶다면 디자인은 기본이고, 그다음에 어떤 코스를 밟든지 의학 쪽을 따로 연구해야 해요. 그다음에 공학적인 것에도 오픈이 돼 있어야 하고 디자인을 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골든 캡슐은 2023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에서 우승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는 수상의 영광이 아니라, 그 이후의 현실이다. 풍선 색상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의료 현장의 관행과 규격이 있고, 단위 표기 하나에도 환자의 생명이 걸려 있다. "편리성보다도 일단 안전해야 하니까"라는 채유진의 말처럼, 의료기기 디자인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피로 쓰인 규격'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이다. 두 사람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